율곡교육촌 (1) 주 앙 생각

율곡교육 (1)


글 : 주 앙



서울 안에 있던 "'율곡교육' 아시나요?" 하고 묻는다면  이름을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아마도 거의 없지 않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그런데 우리 가족에게는 한국을 떠나던  순간까지 살았던 고향 같은 그리운 이름이다지금은 전설의 고향이 되고만 "율곡교육" 기억들... 서울시 강북구 현대사의  모퉁이, 돌맹이로 구르다가 산산이 부서지고 말았던 이야기다.

 

1970년 초였던가 그랬다.   남편과 나는 이름하여 부부 교사였다그러나 선생질(?) 아무리 열심히 한다 해도  집 장만은  시절 역시  따기처럼 어려웠그랬는데 희소식이 전해졌다교육계에 종사하는 선생님들을 위한 대형 주택 단지가 세워진다는 것이다. K대학 Y교수를 중심으로 뜻을 함께 하는 막강한 이사진들을 영입한 주택단지조합이 형성되었고,  같은 저들의 계획은 멋진 율곡교육이란 이름과 함께 순탄하게 진행되었다우리는  빠르게 등록을 마치 서둘러 주택공사 조합으로부터 건축 융자 신청 접수를 모두 끝냈다제비 뽑기로 택지는 결정되어 곧 바로   짓기신축 공사에  ’   있었다

돌이켜보면 남편과 나는 세상 물정에 까막이었고, 천지분간을 제대로 못하는 국어 선생, 미술 선생이라는 현실적인 못난이들이었다그럼에  평생에서 제일  했다는 황금절정기를 뽑으라면, 당연히 율곡교육 입성이라 하겠다 떨림 같은 황금기의 순간으로 지금  돌아가는 중이다기억의 저편으로


선택된  주택 번지를 들고 처음 율곡교육촌을 찾았을 때의  벅찬 감격과 황홀함은 잊을 수가 없다. ‘강북구 2 야산’ 37천평 땅에 거의 8백 채의 주택지가 계단식으로 이미 조성되어 있었다 넓고 광활함에 놀랐고, 진달래가 흐드러지게   다른 야산의 전망에 놀랐고, 교육 개별 택지의 크기에  놀랐다제일 작은 평수가 6-70평 정도였고, 대부분 80 혹은 100평을 웃도는 택지도 아주 많았다우리 집은 대지 80 넓이에 위치도 땅의 앉음새도  맘에 들게 환상적이었다 집터에 무릎 꿇어 하얀 모래흙을 끓어 안고 입을 맞추며 흐느낌 같은 눈물을 삼켜야 했던 잊지못할 순간 이었다

그런데 2동은 어디냐구요 설명이 빠졌다낯선 번동', '월계동’ 보다는 익숙한 미아거리에서부터의 설명이 쉬울 터다. 지금은 사라진 대지극장에서 신일고등학교 방향의 중간성북시장 맞은 편 초원제과점(이 제과점 역시 지금은 없을것임) 앞길을 따라 넓게 포장된  골목 도로는  교육촌까지 연결 되어 있었다" 길은  교육이다." 그때 만들었던 내 슬로건 이었다


늦은 봄부터 시작된 우리  신축은 여름 장마를 빗겨가면서 초가을 쯤 마치고 드디어 완공되었다슬라브 형식의 양옥 주택이다앞면은 세라믹 벽돌로 현대식 멋을 부렸고 녹색의 장원’ 같은 정원을 꿈꾸며  건물을 뒤편으로 바짝 부쳤기에  정원은 넓었다.

교육 새 집으로 이사를 했다가슴은 기쁨으로 터질  했다집을 건축하는 동안 우여곡절은  얼마나 많았던가.  모든 사연은  녹듯 사라졌고 말 그대로 천국으로 화하도다였다이제  한 살 되던 막내그리고 7살의 첫째와 5살 배기 둘째, 올망졸망한  아이들... 저들도 잠을 이루지 못한  기뻐 뛰고  뛰었다그랬는데   후에는 잠시 떨어져 살던 부모와 시동생이 소리 없이 이사를  오셨다다시 대가족의 시작이 되고 말았다어쩌겠는가남편은 종갓집 장손인 것을...


그런데 ‘율곡교육 일이 터졌다. 8백 채가 넘게 들어설 교육 단지의 건축 허가는 동결되고 말았다이유인즉 무슨 군사분계선 영향권이라나 뭐라나 그랬다당시 정부가 가장 손쉽게 이용할  있는 정책은 남북간의 대치, 관련 법을 이용하면 그것은 절대적인 법이고 진리였던 때였다나중에아주 나중에야  알았다정부는 강남 개발에 불을 지폈기 때문이예를 들어, 잠실 땅은 농토였고 그 지역은 농촌이었다 땅 값이 1원이였다 치자. 정부가 손을 쓰자 1원은 10원으로, 아니100원으로 치솟았고  주인들은 하루 아침에 억만 장자가 되었다. 그런 이었다여기저기 강남의 졸부들 탄생이 줄을 이었다강북 개발을 묶어야  이유가 그랬다율곡교육촌은 그렇게 희생 제물로 무려 15년이란 세월 속에 폐허의 땅으로 침묵해야  했다


 앞에 앞 집은 공무원 뒤에 뒷 집은 기독교방송국 K목사님그리고 초등교사 두 분대학 교수 두 분 등등, 초창기에 함께 집을 지어 입주한 교육촌의 이웃들이다 넓은 교육 단지에 고작 30채도 안 되 숫자였다그랬으니 우리들은 '자연의 나라' 같은 환경 속에서 삶을 이어갔고, 순수한 '시편 나라'의 정서를 누리고 살았던 셈이다

아이들은 코스모스 같았고 해바라기 같았다흐드러진 꽃들과 함께 빈 터의 채소 밭에서 땅을 벗삼아 청년이 되고 소녀가 되었다. ‘율곡교육’,  땅의 축복이였고 은혜였다. 그럼에도 꿈틀거리는 분노함은 크게 있었다.  시절부터 서울은 그렇게 강남 강북이라는 어처구니 없는 이분법적 사고 방식은 사회 전반에 걸쳐 암적 세포가 되어 퍼져나가기 시작 했으니까.

…       


덧글

  • 김성희 2018/01/19 17:35 # 삭제 답글

    아!1984년 애들이랑 번동에 있는 언덕배기 동일이집 우르르 갔던거 생각나요~^^그때 온 집안에서 행복의냄새가 물씬 풍겨 부러웠었는데..동일이의 아름다운 음악이 이유없이 나온 게 아니구나.가정의 힘이 이런게구나.
    코스모스같은 해바라기같은 아이들에게 좋은 스위트홈은 부모로서 신실한 의무겠죠^^
  • 주앙 2018/01/23 07:08 #

    ,,세상에나 그때 성희씨도 왔었어요?? 84년도,,학원가는 툭하면 휴교령이 엄포됬던 때 였었죠.
    과 학생들이 휴교소식을 미처 못듣고 모였었나..암튼 기억은 가물한데 그렇게 모인김에 우리 교육촌
    집으로 우루르 한패거리(?)를 이루어 달려들 온거에요. 주로 남학생은 빠짐없었고 여학생은 몇명
    합세를 하지 않았는데 그 몇명안에 성희씨가 있었다니~~놀라운 일이네요. 성희씨의'율곡교육촌'집을..
    그리고 '웨스트우드'집까지,,시간의 '흔적'같은 '점' 같은 그 기억들앞에서 그냥, 할말을 잃어버리네요.
    동일은 7-8세부터였나,,곡을 만들어 내 생일선물로 주곤 했었던 ..맞아요, 교육촌 환경은 그랬었지요.
    아이들 이야기도 장편감인데 생략하고...성희씨의 교육촌기억만 접수하기료,,합니다요...하하^

  • Moon 2018/01/20 04:25 # 삭제 답글

    옛 기억을 어떻게 그리 상세하게 하시는지 놀랍습니다. 아주 재미있고 흥미있게 잘 읽었어요.
  • 주앙 2018/01/23 07:21 # 답글

    실은 올해가 '황금개띠'라 문득 개님들 이야기를 쓰자,,했어요. 개님들 기억이 아주 많았거든요,
    그런데 그만 이야기가 삼천포로 빠지고 말았어요.기억에는 딸들의 도움을 주기도 했었구요.
    재미있었다니 고맙고요,, 막연한 다음편도 기대해주셔요. 나도 잘 모르겠는 그 '막연함'으로..요.
  • 순돌이 아빠 2018/04/20 23:12 # 답글

    오늘 아주 오래된 초등학교 친구를 만나 어린시절 이야기를 나누다가 어렸을 때 살았던 동네 이야기가 나와서 율곡교육촌을 검색해보니 이 글이 보이네요.  "'율곡교육촌'을 아시나요?" 라는 질문에 "네 알아요" 하는 대답과 함께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글을 읽다보니 어린시절 살았던 번2동에 대한 추억들이 새롯새록 떠오릅니다.
    행복한 유년시절을 보냈던 마음의 고향과 같은 곳이 바로 번2동 율곡교육촌이지요. 율곡교육촌에 대한 아름다운 추억을 가지고 계신 분이 또 있다니 너무 반갑고 기쁜 마음에 이렇게 글을 남겨 봅니다 
  • 주앙 2018/04/21 22:20 # 답글

    두근두근,,나도입니다. 번2동 교육촌에 사셨어요? 세상에..이렇게 반가울수가 없어요. 그럼 교육촌이
    건축허가 묶인 이전? 아니면 이후인가요? 이전이면 교육촌분들 거의 다 알거든요. 와..우리 만나면 금새
    주루륵 다 연결고리 될것 같아요. 정말 반갑고 반갑습니다. 글 남겨주셔서 오늘은 교육촌을 한번더 품어
    봅니다. 다시 못다한 교육촌 글 써야겠다는 생각도 들었구요..나도 여간만 기쁘지 않습니다.**
  • 순돌이 아빠 2018/04/22 21:54 #

    번2동은 '고향의 봄' 가사처럼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진달래 피던 동네로 기억되는 곳입니다. 특히 봄철이면 앞산과 뒷산이 온통 진달래의 분홍빛으로 물들었던 풍경이 떠오릅니다. 제가 1977년부터 83년 여름까지 번2동에 살았으니 그 때가 건축허가가 묶여있던 때가 아닐까 싶네요. 7살부터 6학년 1학기까지 유년시절의 추억이 가득한 곳이지요. 성인이 되어 다시 찾아본 번2동 더이상 제 기억 속에 마을이 아니어서 크게 실망한적이 있었습니다. 그날은 마치 고향을 잃어 버린 듯 슬프고 마음이 아팠던 기억이 납니다. 글을 읽다보니 주앙님은 아마도 저희 부모님 연배쯤 되신 것 같습니다. 마을에는 제 또래의 아이들이 많았고 부모님이 교사인 친구들이 여럿있었던 것 같고...아마도 제 기억 속에 멋진 세단을 타고 다니시던 분이 K목사님이신것 같습니다. 그 분댁에 커다란 앵두나무가 있었는데 앵두가 열리면 아이들을 불러 앵두를 나눠주시던 사모님의 자상한 모습이 기억이 납니다. 제가 살았던 집은 마을 제일 높은 곳에 있었던 초록색 지붕의 2층집입니다. 어떤 분들은 비둘기 집이라고 부르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 신동일 2018/04/23 09:11 # 삭제 답글

    안녕하세요 "순돌이 아빠"님, 저는 이 블로그 주인이신 주 앙 님 아들 신동일입니다.블로그 스텝이기도 하구요. ^^
    댓글 보고 어머니하고 기억들 맞춰 보다가 처음으로 답 댓글을 쓰게 되었네요. ^^
    저희는 72년~86년까지 교육촌에 살았구요, 마을 중간에, 높이 자란 커다란 오동나무가 있는 집이었습니다. "순돌이 아빠" 님은 뒷산 가까운 쪽에 사셨던 것 같은데, 그쪽 분들은 잘 모르고 지냈던 것 같아요. ^^;;
    교육촌 사셨던 분이 글 남겨주셔서 반갑고 신기하네요. ^^
  • 순돌이 아빠 2018/04/23 22:07 # 답글

    아~ 안녕하세요. 요며칠 제 자신이 참 놀라운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재작년 쯤 아주 오랜만에 초등학교 때 친구를 만나게 되었는데 그 때 나누었던 이야기 속에 번2동에 대한 이야기들이 있었습니다. 어린시절 늘 궁금했던 것 중에 하나가 마을 입구에 커다란 비석에 새겨진 율곡교육촌이란 어떤 의미가 있었을까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그 바위 비석은 어디에 놓여있을까, 지금도 그 이름을 계속 쓰고 있을까 하는 여러가지 궁금증이 생겨서 인터넷을 검색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때 몇가지 정보와 사진과 함께 올려있는 글들 발견하게 되었는데 그중 하난가 신동일님의 블러그였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때도 반가운 마음에 글을 남기기도 했었는데... 두분이 어머님과 아드님 이셨군요...제 기억속의 퍼즐들을 더듬어 보아도 두 분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는데... 성함과 부모님이 교사셨던 걸 생각해보면 신애니라는 친구의 가족분들이신 것 같네요.
    며칠전 초등학교때 친구를 다시 만나 식사를 하다가 율곡교육촌에 대해 알게 된 것을 그 친구에게 알려주려고 스마트폰을 꺼내 검색창에 '율곡교육촌'을 쳐보니 새로운 글들이 있어서 신기하게 읽게 된 것입니다.
    덕분에 잊혀졌던 옛 기억들과 감정들이 새롭게 경험되고 있습니다. 제 마음에 율곡교육촌은 늘 그리움과 아쉬움으로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6학년 1학기를 마치고 여름방학동안 친척집에 가있는 동안 갑자기 집이 이사를 하게 되어서 친구들과 인사도 못하고 떠나게 되었지요. 그래서인지 제 마음속에 번2도은 그립고 고마운 사람들에 대한 추억이 있는 곳...언젠가 다시 돌아가보고 싶은 곳... 마음에 고향과 같은 곳으로 남아있습니다.
    제가 살았던 때가 딱 개발이 정지되었던 때였던 것 같습니다. 개발이 묶여 있던 것이 경제적으로는 별로 좋지 않았겠지만 생각해보면 그 덕분에 자연과 어울려 살 수 있었던 환경이 오히려 축복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가끔 누군가와 어린 시절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제가 시골 산동네에서 자란 것 처럼 생각하기도 합니다. 제가 서울에서 자랐다고 하면 마치 6.25 직후에나 있었을 법 한 이야기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더군요.
    제가 며칠동안 겪고 있는 놀라움 중 하나는 어린 아이들을 대하는 마음에 자세가 달라진 것입니다. 아무리 작은 꼬마 아이라도 그들 안에 꿈과 우정과 사랑과 인생의 이야기들이 진행중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습니다. 또 한가지는 이 글을 쓰신 분이 저의 부모님과 비슷한 연배의 분이라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글속에서 인생의 경륜도 느낄수 있었지만 소녀같은 감성도 느낄 수 있어서 저의 부모님은 어떤 인생의 스토리를 가지고 계실까 하는 궁금증이 더욱 생기게 되었습니다.
    어머님(주앙님) 속에 있는 율곡교육촌의 이야기들을 계속 올려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형님(신동일님)의 기억속에 율곡교육촌의 이야기는 어떤지 궁금합니다. 이 참에 저도 용기를 얻어 율곡교육촌의 이야기를 글로 써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에구 제가 이렇게 길게 댓글을 쓸 줄은 몰랐네요.
    행복했던 율곡교육촌에 대한 추억소환 감사합니다.^^ 아 제 이름은 이정훈이라고 합니다.
  • 신동일 2018/04/23 22:36 # 삭제 답글

    이정훈 님, 안 그래도 연배가 제 막내 동생과 비슷하겠다 싶었는데, 정말 애니와 학교를 같이 다니셨나 보군요. 신기하네요. ㅎㅎ 애니는 어머니와 같은 동네 미국에서 살고 있습니다. 저는 서울에 있구요. 저희 형제들이 동네 친구와 별로 놀질 않아서 잘 모르는 분이겠다 싶었는데, 애니를 아시는군요. ^^

    율곡교육촌은 저에게도 고향과 같은 곳입니다. 여기로 이사 오기 전까지 8번 이사를 했던 걸로 알고 있구요, 교육촌에서 초등학교 1학년부터 대학교 3학년까지를 살았으니 고향이나 다름 없죠. 교육촌은 30 넘어서 한 3-4번 갔던 것 같아요. 가장 최근이 재작년인가 했고, 사진도 그 때 찍은 것입니다. 저도 동네가 번잡하게 변한게 싫어서 잘 안 갔는데, 최근에 가서는 마음이 또 다르더군요. 아무튼 고향 동네 사람을 만나게 되어서 반갑습니다. 제 블로그에도 다녀가셨군요, 반갑습니다. ^^
  • 신동일 2018/04/23 22:48 # 삭제 답글

    이정훈 님, 저도 다시 검색을 해 보니, 제가 요즘 살펴 보지 않는 티 스토리 블로그에 댓글을 남기셨군요. 애니하고 4학년 때 같은 반이셨나 보네요. 글 남겨주신 줄 몰라서 답글도 못 썼네요. 애니에게도 안부 전하겠습니다. ^^
  • 주앙 2018/04/24 21:25 # 답글

    산위에 '초록색지붕'..그리고 닉네임'비둘기집'..그 바탕으로 '순빠'(순돌아빠)의 정체찾기에 가족들이 설왕설래 했어요. 그리고 요렇게 연결고리가 이어지다니..정말 신기방기입니다. 끝글에 내 막내 이름까지..그것도 4학년 한반이였다니..그 기억까지 하다니,,놀라워요.막내의 언니도 있어요.ㅎ 그래요,,'순빠'의 남다른 교육촌 향수의감성은..그리고 그간의 남긴글솜씨로는 글쟁이 재능이 가득한것 같아요. 쓰세요,,'Do it Now This time!'(내 책상앞에 붙혀진것)입니다. 참, K목사님 앞집,하늘찌르는 오동나무집이 우리집이였답니다. 부모님께도 안부해 주십시요.

    오늘은 맘먹고 '순돌이아빠'를 이곳저곳 검색했어요. 왠 순돌이란 이름이 그리많은지..혹 하양강아지 순돌아빠가 정훈씨?? 했네요..ㅎ
  • 순돌이 아빠 2018/04/25 00:13 #

    아...순돌이 아빠는 예전에 어느 드라마에 나오는 캐렉터에서 붙여온 건데 그저 좀 편안하고 친근한 느낌 때문에 쓰게 되었지 특별한 의미는 없습니다. 제가 카페나 블러그를 운영하는 것도 없고 제 이름도 너무 흔해서 검색해서 나올 만한게 없을 것 같은데요 ㅎㅎ
    혹시 Facebook 을 하신다면 https://www.facebook.com/hooniwayoungi 로 찾아보시면 됩니다.
    네 사셨던 집이 정확히 기억이 났습니다. 오랜만에 만났던 친구와 어머님의 글을 통해 잊고 지냈던 기억 저편의 이야기들이 머리 속에 계속 떠오르네요
    덧글을 달기 위해 이글루에 가입하게 되었으니 이참에 저도 블러그를 만들어 떠오르는 이야기들을 써봐야겠습니다. 글솜씨는 없지만 시간이 되는대로 조금씩 올려보겠습니다.
  • 주앙 2018/04/27 22:34 # 답글

    아 예..주변이 정리되는데로 순돌님 페친 요청할깨요.
    글쓰기 기대,고대, 하고요, 으싸으싸~응원합니다. **
  • 권혁돈 2018/05/03 02:10 # 삭제

    옛 추억에 젖어 세월의 흐름도 잊은채 어린시절로
    돌아가 그 때 느꼈던 감정들을 고스란히 마음밖으로
    펼쳐놓는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저는 닉네임 순돌이아빠 이정훈의 친구 또한 애니와 같은 4학년17반 친구 권혁돈입니다
    친구 정훈이와 오랜만에 연락이 되어서 만나게 된것은
    친구 정훈이가 사역하는 하늘정원교회였습니다
    국민학교시절 정훈이는 말수도 없고 아주 조용하고
    정말 착했던 친구였습니다
    그렇게 조용하고 착했던 친구는 영혼을 살리는 목회자가 되어 만나게 되었습니다
    첫 만나는 곳이 다름아닌 교회였다는 것도 저에게는 참 신선하고 좋았습니다
    저는 화계국민학교 야구선수였습니다
    신일 중,고등학교를 거쳐 홍익대학교를 졸업하고
    무릎 수술을 받게 되어 야구선수의 길을 접고
    지도자의 길을 빨리 걷게 되었습니다.
    27살때인 1997년 모교인 신일중학교감독을 시작으로
    야구감독이란 이름으로 지금껏 살아가고 있습니다
    대학감독 8년을 한 뒤 신학을 공부하게 되었지요
    저는 친형님이 목사님이셔서 빨리 장로가 되어서 형님을 잘보필하는 장로가 되는 것이 저의 작은 소망중에 하나였습니다.
    신학을 공부하고 전도사가 되어 제가 사역하는 교회가 아닌 다른교회에 강단에 처음으로 선 것이 친구가 담임하고 있는 하늘정원교회였습니다.
    국민학교 4학년 그 때가 1981년이었으니
    35년만에 재회었던 것이지요
    친구 정훈이는 목회자로 사역을 하고 저는 야구를 통한스포츠선교사로 사역하고 있습니다.
    정훈이와 얼마전 다시만나 율곡교육촌 이야기를 하면서 4학년때 같은반 친구였던 애니이야기를 하게 되었고 오빠이신 동일형님의 블로그에 글을 읽게 되었다는 정훈이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어릴적 같은 반 친구로 애니는 공부도 잘했지만
    그림을 잘 그렸던 친구로 기억합니다
    1981년 그 시절은 반공 포스터에 관한 그림을 참 많이 그렸던 기억이 납니다. 또 불조심 포스터도. 많이ㅈ그렸는데 그 중에 우수작으로 뽑혀 교실 뒷편 게시판에
    애니의 작품이 전시되었었지요
    애니의 포스터 그림의 제목은 '시선집중' 이었습니다
    솔직히 저는 그 때 '시선'이라는 낱말의 뜻도 잘 몰랐는데 애니의 그림으로 인해 시선이라는 낱말의 뜻을 알게 되었지요 ㅎㅎㅎ
    옛날 기억들이 새록새록, 그리웠던 4학년 때 친구인 정훈이와 애니의 소식을 알게 되고 참 좋습니다
    어머니 닉네임이 '주앙' 혹시 주를 앙모 라는 뜻에서 앙모이신가요?
    애니가 믿음의 가정에서 자란 자녀라는 것도 37년만에
    알게되니 더 반갑고 감사하네요
    서울에 계신 동일형님도 화계국민학교 선배님 이시겠죠. 언제 한번 정훈이와 연락해서 선배님께 밥한끼 사달라고 어리광도 부려야봐야겠네요^^
    반가운 마음에 어린아이가 부모님께 마음을 토로하듯두서없는 글을 올렸습니다
    애니가 미국에 산다니 정훈이와 함께 미국으로 한번 가야하나? ㅎㅎㅎ
    애니에 관한 재미난 일들이 저에게는 몇가지 있습니다
    그런데 혹 애니는 정훈이와 저를 도무지 알지 못하는 친구라고 말할 수도 있겠네요 ㅜㅜ
    어머님(주앙님)께서도 70대 후반이나 80대이실 수도 있으실텐데 하나님께서 주시는 하늘의 신령한 복인
    마음의 평안이 매일의 삶속에서 임하시기를 부족하나마 기도합니다.
    몸도 마음도 건강하세요~~~^^
  • 신애니 2018/05/03 21:34 # 삭제 답글

    엄마의 글 한나로 어릴적 어렴풋한 친구들의 소식을 대하게되어 신기하고 반갑습니다. 정훈, 혁돈 넘 반가워요! 페이스북을 거의 사용하지 않하지만, 들어가 찿아보니 얼굴들이 생각이 나네요... 목사님과 스포츠 선교사님이된 친구들의 소식은 더 반갑고 감사한 소식입니다...!!

    어쩜, 전 기억에도 없는 불조심 포스터를 기억하다니, 기억력이 대단하네요. 지금 생각해 보니 "시선집중"... 혹시, 엄마가 도와주신 포스터 표어가 아니였을까 생각해봅니다...^^

    중학교 졸업때쯤에 미국으로 이민와 이제는 중년 아줌마가되어 생각속에 접어두었던 푸르른 율곡교육촌에서의 어린시절, 이제다시 하나하나 추억들을 꺼내어 보게됩니다....
  • 권혁돈 2018/05/04 08:56 # 답글

    중년 아줌마?ㅜㅜ
    내 기억속에 애니는 1982년 내 생일날
    다른 친구들보다는 조금 늦게 도착해서 생일 축하노래로 '낮에 놀다 두고온 나뭇잎 배'를 불러주던 12살의 친구모습으로
    시간이 멈춰져 있습니다
    어떤 모습일까? 너무 궁금하고 너무나 조용했던 친구에게 한번도 말을 못 걸어봤던
    기억들이 생각납니다

    그때의 좋았던 친구들.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을지----
    이정훈 김영석 장우진 안종욱 유일렬 정영재 황동구 김태경
    신애니 김지영 서현선 장수진 권구윤 김영미 고승혜. 고현희 윤승혜 등등
    (1986년 초 눈오는 날 천국으로 먼저 간 보고 싶은 친구 강현식)
  • 순돌이 아빠 2018/05/09 04:00 # 답글

    초등학교 시절에도 목사님 같았던 친구 혁돈, 요즘 아이들의 표현 처럼 만화를 찢고 나온 소녀 같았던 애니, 추억속의 친구들과의 만남이 반갑고 놀랍습니다. 종종 재미있었던 추억들을 나눠봅시다.

    신동일 형님, '고향 친구' 이렇게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고향을 다시 찾은 듯 반가웠습니다. 번2동의 뒷산에 산책길이 잘 조성되어 있던데 언제 시간이 되시면 혁돈이랑 저랑 함께 산책 한번 하시면 어떨까요?

    어머님의 따스한 응원과 격려로 글쓰기를 시작해봅니다. 감사합니다. http://kcogop.egloos.com/6333278
  • 신동일 2018/05/09 21:39 # 삭제

    초등학교 친구들이 좋은 대화를 이어가고 있군요. ^^
    언제 교육촌에 한 번 같이 가죠. ^^
  • 신애니 2018/05/09 06:50 # 삭제 답글

    블로그 오픈 추카드려요!!! 엄마가 너무 기뻐하세요. 잔잔하고 따듯한 이야기들이 기대됩니다...
  • 권혁돈 2018/05/11 01:21 # 답글

    신일중학교 야구감독시절 2000년도에 결혼해서 첫번째 신혼집이 율곡교육촌이라 쓰인 바위가 있는 곳에서
    200m 정도 떨어진 곳이었습니다.
    초등학교시절에는 삼양극장쪽에서 살았고 중.고등학교 시절은 장미원에서 살았지요
    지금은 덕성여대 앞에서 살고 있으니 고향을 지키고 있는 셈이네요
  • 주앙 2018/05/30 05:07 # 답글

    '고향지킴이..'혁 선교사님 답글을 제데로 못했어요. 어쩜 기억력이 완전 천재형이세요. 나도 한 기억쟁이란
    소리를 듣는 사람인데 선교사님 발 뒤꿈편이구나 했어요. 교육촌에서 신혼을 시작했다는 사실 또한 놀랍구요...들었죠? 막둥사위가 카운티 야구팀리더라구요.한번 이쪽으로 원정오셔서 제데로 훈련좀 시켜주세요..ㅎ
    혁선교사님..순돌이목사님..교유촌의 사람들...정말 우리들 만남은 우연이 아니였음을 다시한번 절감합니다.

    어린이..청소년들이 반 기독교적으로 빠르게 옆길로 달려갑니다. 멀리 다른나라선교도 중요하겠지만 내 곁에..
    내가 선 자리에서의 청소년들에게 선교해야함은 너무 절실한 현실입니다. 교육촌 용사들..기대합니다.
  • 벤쿠버 2019/06/08 23:54 # 삭제 답글

    어머 깜짝놀랐어요
    저는 1971년 1학년 화계국민학교 다녔고 수유여중 2학년때 이사왔어요
    지금은 카나다 벤쿠버 살아요. 저희부모님은 엄마가 국민학교 선생님이셨어요. 이번 한국가면 꼭 가보고 싶은 곳이어요. 글로 표현해 주신대로 어린시잘 그곳의 기억이 요즘 부쩍 많이나서 가끔 꿈도 꿔요.
    초원제과의 빠다크림 꽃무늬케잌이 신기해서 코를 밖고 쳐다봤던게 기억나요. 저희 앞집은 3명의 남자 아이들이 있었는데 수영장이 있었고 우리집 그네에서도 놀기도 했어요. 기억에 아르헨티나로 이민 가셨던거 같아요. 저는 여동생 하나있구요. 너무 너무 그리워요.





  • 벤쿠버 2019/06/09 00:00 # 삭제 답글

    제 이름은 이상임. 제동생은 이미경 이에요
  • 주앙 2019/06/09 03:22 #

    벤쿠버님! 어쩜 화계학생에, 초원제과에, 알젠틴으로 이민떠난 '택상'(?)네까지,,다 기억하시네요.
    교사셨던 어머님을 기억으로 떠올려봐도 영,기억은 가물가물입니다. 예전글 '교육촌'을 읽고 덧글을
    달아준 '벤쿠버이상임'님을 생각하니 정말 놀랍고 신기합니다. 케나다는 가까운편인데 언제 이쪽으로
    오게되면,,아니 우리도 갈수있다면 언젠가 상임씨를 만날날이 있을것만 같아요. 윗 댓글 '애니'는 내
    막둥이 71년생, 상임씨와 화계동문, 월계중,,막내도 2학년말에 한국을 떠났지요. 암튼 '상임 미경'
    자매님 덧글 만남은 이날 그순간의 즐거움이고 기쁨입니다.
  • 벤쿠버 2019/06/09 04:12 # 삭제 답글

    어머.
    택상이.윤상이 호상이.다 기억나요. 택상이랑 같이 그네타고 놀던사진도 있구요. 저희는 택상이네 바로 앞집이었어요. 옆집은 현영이 현수네고요
    전 아마 주앙님짚앞을 지나 학교다녔던고같아요.누군가 여기 화가가 산다했던거 같구요. 1978년 중학교 2학년때 연희동으로 이사왔구요. 부모님은 용인사세요. 너무 놀라와요. 부모님과 동생에게 어서 알려드려야겠어요.
  • 주앙 2019/06/09 10:51 # 답글

    와! 완전한 교육촌추억이네요..맞아요, 택상이네쪽 학생들은 등교길이 우리집 앞길,,이였어요.
    교육촌 이웃 이름들을 어찌 그리 잘 기억하는지 놀라워요. 나도 기억나는 이름들,,한선약국,부선,
    창열,창준,,또 있을것같은데,,그저 가물하네요.

    "누가 이사람을~모르시나요~"교육촌글 한편으로 마치 이산가족 상봉을 만난듯해 그저 먹먹하고
    있답니다. 한가지만 더요, 초원제과 오른쪽편에 '주앙'이 있었답니다.ㅎ 언젠가는 '주앙이야기'도
    풀어 놓을겁니다. 아무튼 시간은 너무 아득하기만 하네요,,^^

  • 벤쿠버 2019/06/09 11:42 # 삭제

    주앙님 아름다운글 기대할께요.
    요즘 길가에 블랙베리가 한창이에요. 이곳 벤쿠버는.
    그걸 볼때마다 산딸기.아마 블랙베리 따러 산속을 헤메다가 오후 수업늦게가서 선생님께 야단 맞은 기억도 나요.
    전 그곳에 기억이 동생과 달리 아주 깊이 나요. 혼자 학교 끝나고 돌아오는 길이 어찌나 멀던지 누가바 아이스크림이나 들에핀 꽃 강아지풀. 코스모스들 보면서 힘내면서 집에 왔었어요. 다음글 응원합니다.
  • 주앙 2019/06/11 09:45 # 답글

    벤쿠버님은 아주많이 풍부한 감성을 갖으셨네요. '교육촌'은 그랬어요, 흐드러진 코스모스와 해바라기,
    그리고 이름모를 들풀들,,저들속에서 무한한 순수성을 흡입하며 성장기를 보낸 아이들은 남다르고 유별
    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님의 덧글을 통해 또다른 인증을 하게 되는군요. 그래서 그 감성전달이 특별
    하게 느껴집니다. 상임미경자매와 벤쿠버가족을 가슴에 새깁니다. 응원 고맙고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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