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이것만은…(1)
글: 주 앙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이것만은... 그래야만 했다, 그랬는데 이제는 땅속 구덩이도 대나무 숲도 아 닌, 하늘을 향해 ‘임금님 귀는...’ 소리쳐 에코를 날려보내기로 한다. 그렇게 쓴다. 쓰기로 한다. 아니, 써야만 하겠다. S목사님의 말씀이다. 개인사는 역사의 갈피를 이룬다고. 힘을 받고 가기로 한다.
‘둘만 낳아 잘 기르자.’ 그때에 걸맞게 여섯 살 아들과 네 살 배기 딸, 우리 아이들은 가장 이상적인 가정의 그림이였다. 아이들은 유난히 조용한 편이었다. 오누이가 싸움 한 번 모른다. 책보기, 만들기, 그림 그리기, 국적국적 혼자 놀이에 익숙한 아이들... 이웃집 아이들이 놀러 오면 내 아이들은 손님 같았고, 놀러 온 아이들은 집주인 같았다. 어떤 땐 잠깐씩 아들이든 딸이든 한 명만 더 있었으면... 스치듯 나 혼자 그랬었다. 그랬는데 진짜 이상한 징후가 몸으로부터 느껴졌다. 허우적거리는 일상은 병원조차 갈 틈을 주지 않았다. 어찌어찌 날을 잡았는데, 세상에나 임신 3개월이 넘었단다. 놀랐지만 일단 나는 그분의 귀한 선물로 받아드렸다. 얼마 후 남편에게 알렸다. 기뻐해 줄 것은 기대도 안했지만 그는 완전 뭐 씹은 듯 했다. 무심하게 한 달 쯤 더 지났을까, 그 날 남편은 서있었고 나는 앉은 상태였다. 그는 봉투를 휙 내 앞으로 던지며 "당장 애를 지웟", 그랬다. 기가 막혔다. 순간, 저 사람이 내 남편이고 아이들 아빠인가... 너무 모욕적이고 치욕적이었다. 얼음같이 굳어진 나를 보고 그는 좀 주춤했다. "아니 양손에 아들딸 손 잡고 걷자면 한 명은 남으니까..." 그제서야 그는 설레발을 쳐댔다.
분연히 일어섰다. 남편이 던져준 돈봉투를 움켜쥐고 집을 나섰다. 남편으로부터 생활비를 받아본 적도 없는 내 손에 주어진 봉투의 의미는 아내에게 던져진 사형선고와도 같았다. 그랬다, 더 이상은 아니다. 다시는 우리에게 새 생명은, 다시는 없으리라. 병원 행 버스를 탔다. 차창 밖으로 부슬비가 내리고 있다. 내 눈에는 콸콸 폭풍 같은 눈물이 쏟아지고 있었다. 아무리 국가적인 낙태법이라지만, 임신 3개월 이후의 유산은 살인행위나 마찬가지다. 아예 7-8개월 아기까지 떼어내는 당시의 정치적 배경은 더 이상 언급할 가치 조차 없겠다. 의사는 유산절차를 꼼꼼하게 챙겼다. 내 경우는 4개월을 넘어 전신마취를 하겠단다. 유구무언이다. 시술대에 올랐다. "자 이제 마취로 들어갑니다.하나 둘 셋, 숫자를 세세요." 커다란 마취제 주사기가 왼쪽 팔 혈관을 찾아 막 찌르기 시작이다. 순간 나는 화들짝 소리를 질렀다. "앗! 선생님! 잠깐만욧!" 멈칫, 의사도 놀란 듯 했다. "왜? 왜 그러세요?" "저기 선생님, 저기요 선생님, 오늘 진료비랑 주사 값 다 지불할테니 수술 중단시켜 주셨으면 해서요." 그랬는데 의사는 허리를 피며 활짝 밝은 미소까지 띠고 말했다. "아, 그러실래요? 그러세요, 잘 생각 하셨네요. 근데 주사 값 안 주셔도 되요, 다른 환자에게 쓰면 되니까요. 어서 준비하고 돌아가시고 정기 검진 때 맞춰 오시면 됩니다." 돌아오는 길에 또 다른 폭풍 눈물을 쏟아내야만 했다. 형언키 어려운 환희의 눈물을... '그래 아가야, 정말 미안하다. 하지만 한 순간 너를 지켜냈듯이 끝까지 네 곁을 끝까지 지켜줄 것을, 그분 손 잡고 약속한다 아가야.' 울어도 다 못할 오수의 해님은 방긋 떠 올랐다.
나중에, 아주 나중에야 알았다. 그때서야 '그럼 그렇지 결국은 그거였구나', 그랬었다. 시모님은 언제부터인가 아들 손자 하나를 더 낳아야 한다고 혼잣말을 시작했단다. 잘 길들여진 장남 남편은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이 그의 본분이다, 그런 사람이다. 그는 아마도 아내를 위한답시고 임신을 알렸나 보다. 그런데 시모는 박수무당과 함께 동락하는 분, 당연히 무당에게 며느리 임신점괘를 보셨겠다. 정확히는 모른다. 무조건 이번 아기는 지워야 하고 곧 다음 아기가 태어난다, 그런 내용이었나보다. 남편은 그 일에 순종 했을 터... 박수무당이 원인이였다. 불교, 천도교, 유교, 천주교, 기독교, 하다 못해 모슬렘 이슬람까지, 다 인정하고 수용할 수 있다. 그쪽 박수무당, 굿거리, 점집의 부적 같은 행위는 절대 인정도 받아들여서도 안 되는 미신에 불과하다. 아마도 시모님의 ‘예수쟁이’ 길들이기는 깊은 안개 속 미궁으로 빠져드는 것은 아닐까. 모골이 다 송연하다.
K중고는 남자 학교다. 그곳 교감 H선생님은 지명도가 높으신 화가다. 홍일점 미술선생인 나를 위해 교장님과 함께 크고 많은 특혜를 베풀고 마련해 주었다. 미술실을 따로 갖게 했고, 이젤과 물감까지, 미술부 지원을 아낌없이 해 주었다. 학교에서 인기 최고의 미술부다. 미술부에 들어오려면 테스트를 거쳐야 할 정도였다. 대외 큰 미술대회에서 큰 상을 휩쓸어 와 학교 이미지까지 업시켰으니, 선망의, 로망의 미술반이 될 수 밖에. 그런데 이를 어쩐다? ‘배 불뚜기’ 미술 선생이라니, 어떻게 해야 하나... 뻔뻔함도 타고 나야 하는데... 그냥 생긴 대로 가자, 사표를 준비하자, 바보 같이….




덧글
그래요, 왜 아닐까요, 내 상황을 몇 학부형들은 알고있던터라 이혼을 몇번씩 권유받은적 있었죠.
그럼에도 생각조차 할수없었던 이유는 오직 '예수쟁이'라는 이름에 먹칠할 수 없다는것,또 하나는
아빠없는 반쪽이 아이들은 죽어도 안된다는 강한 신념 때문이였어요.더 많은 해명을 하고싶은데
내 험한길을 인도하신 오직한분! 그분의인도하심으로 살아냈다는 고백으로 '끝맺음'합니다.^